몇 달간 미국에 체류하며 밥을 해먹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손질 야채들이었다. 요리를 할 때 개인적으로 시간이 가장 많이 잡아먹히는 부분이 재료 손질이다. 그 단계만 생략되어도 요리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는데, 손질 야채의 대중화는 그런 면에서 생활 요리인의 생활을 한결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
물론 국내에도 손질 야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1인 가구 용의 소량으로 포장되어 있고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반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먹는 채소인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아스파라거스, 그린빈, 브뤼셀 스프라이트의 경우 세척/커팅은 기본이고 봉지째 전자렌지에 돌릴 수 있게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면서 사다먹어봤다가, 이후에는 매주 몇 봉씩 구입해서 먹었다. 메인요리에 곁들일 채소를 봉지째 전자렌지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끝이니 식사준비를 하기도,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기도 편했다. 자취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야채를 적게 먹게 되는데, 인스턴트 식품 돌려먹는 것과 노력의 차이가 없으니 챙겨 먹기 쉬웠다.
맛도 좋다. 브로콜리는 물에 데치는 것보다 전자렌지로 시간을 잘 맞추는 편이 더 맛있다. 방울양배추도 오븐에 굽는 것보다 전자렌지에 돌리는 편이 훨씬 빠르고 골고루 익었다.
브로콜리/컬리플라워/브뤼셀 스프라이트 전자레인지 조리법
1. 세척해서 커팅한 채소를 전자렌지용 용기 혹은 비닐팩에 넣는다.
2. 전자렌지 출력에 따라 3-4분 돌린다.
3. 소금과 후추, 취향에 따라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는다.
초반에는 이렇게 전자렌지로 먹다가, 곧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다음의 레시피이다.
그린빈 레시피이지만 브로콜리나 컬리플라워, 브뤼셀 스프라이트(방울양배추), 아스파라거스, 주키니, 당근 등등 단단한 채소 종류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버터를 한 조각 넣으면 먹을때마다 풍미 가득한 채소 요리가 된다.
단단한 채소를 위한 간편 요리법
- 넓은 팬에 재료를 넣고, 팬 바닥이 살짝 덮일 정도로만 물을 붓는다.
- 센 불로 가열한다. 물이 끓으면 뚜껑을 덮고 3-6분간 끓인다.
그린빈,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주키니, 래디시는 3분, 당근과 브루셀 스프라우트 같이 더 단단한 채소는 6분을 끓인다. 도중에 물이 다 증발할 경우 물보충을 해가며 익힌다. - 뚜껑을 열고 버터를 넣는다. 남은 물기가 다 증발할 때까지 더 가열한다.
버터는 생략해도 무관하지만, 버터를 넣으면 먹을 때마다 행복해진다. - 물기가 증발하면 불을 끈다.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는 경우 이 단계에서 불을 끄고 넣는다. - 취향껏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는다.
음식은 소금맛이다. 특히 한국인은 소금간을 부족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 야채 요리의 경우 소금을 적극적으로 써 주면 훨씬 맛있다.
한식은 서양식에 비해 특히 품이 많이 든다고들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리법과 식사 관습뿐만 아니라 재료의 준비 단계에서 생기는 차이점도 있는 것 같다. 물론 흙 묻은 상태의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에나 건강에나 더 좋기야 하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쫒기는 삶을 살고 있고, 집안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생활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국내에 소매유통되는 채소류 포장에는 개선의 여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제품생산 방식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브로콜리는 전자렌지에 돌려 먹어보자.
참, 이렇게 조리한 브로콜리나 방울양배추는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4-5일간 보관할 수 있다. 먹기 전에 전자렌지에 살짝 데워 먹으면 된다.
'음식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ater칼럼/번역] 지금 외식하는 일은 위험하다 (0) | 2020.07.05 |
---|---|
[해외칼럼/번역] 레시피란 무엇인가 (0) | 2020.06.19 |
하드코어한 미국 김치 - Mother in Law's Kimchi (feat. 샌프란시스코 한인마트) (0) | 2020.06.17 |
감자사라다는 매시드포테이토가 아니다 - 매시드포테이토와 포테이토샐러드, 그리고 감자사라다 (0) | 2020.06.14 |
혼술 난이도별 정리 (0) | 2020.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