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몇 개월간 해외체류를 하는 동안에도 김치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김치를 구입한 건 순전히 중도에 합류한 친구를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한인마트에서 구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들린 가까운 Bi-Rite 식료품점에서 김치 몇 종류를 판매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장모김치 Mother In Law's Kimchi (made in 샌프란시스코)
이 배추를 구입한 Bi-Rite는 힙한 식료품 편집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샌프란 내에 지점 몇 곳이 있다. 로컬 농산물과 고급 식재료, 로컬 레스토랑이나 베이커리의 제품들을 입점시켜 판매한다. 이 곳의 아이스크림도 상당히 인기있어서 붐빌때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이다. 당연히 제품 가격대는 조금 높은 편이다. 아무튼, 사진을 못찍어왔지만 이곳에 김치가 5-6종 가량 구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내가 구입한 Mother In Law's Kimchi가 가장 기본형이라면, 비건 김치, 깍두기, 그리고 요리용으로 김치속만 다져서 판매하는 제품도 있었다. 계산할 때 캐셔가 자기도 김치 좋아한다고, 베이컨이랑 양파랑 같이 볶아먹는다며 말을 붙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음식이 근 몇 년 새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져서, 뉴욕이나 샌프란같이 다양성이 높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최근 업데이트되는 맛집 리스트에도 한식당이 종종 포함되고(참조: 2020/06/10 - [Foodie's Guide - 미국편] - [샌프란시스코/로컬맛집] 2020 상반기 Eater 선정 베스트 맛집 38선 - 1. 리치몬드/선셋지구) 요리책을 봐도 한국식 불고기나 김치를 이용한 레시피가 두어 개는 끼어들어가 있다. Bi-Rite에 입점해있는 걸 보니 힙하고 이국적인 식재료로 여겨지는 것 같다.
아무튼 반신반의하며 구입해 본 Mother In Law's Kimchi.
아마존에 찾아보니 16oz가 35불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에 올라와있는데(현재 품절),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Bi-Rite에서 7불 정도에 구입했던 것 같다. 한국명 '장모김치'로, "1989년 문을 연 <장모집> 레스토랑의 오리지널 레시피"라고 적혀있다. 나파산 배추, 그러니까 샌프란 지역 로컬 식재료로 만든 제품이다.
과연 미국산 김치가 맛있을까 하는 호기심반, 불안감으로 사봤지만, 먹어보니 이건 진정 1989년의 맛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한 신김치. 한국인이 먹기에도 하드코어한 신김치였다. 아니 시발 이걸 미국에서 판다고 역시 근대 한국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존재들은 해외 교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나는 한인마트에서 비비고 김치나 살걸 후회하며 이걸로는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 등 익히고 끓이는 요리만 해먹었다. 김치 자체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너무 실 뿐이지.
샌프란 지역 한인마트 + 한국 식재료 구하는 법
심지어 Bi-Rite에 김치가 입점해있는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샌프란에서 한국/아시아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쌀은 동네의 어느 식료품점에 가도 구비되어 있고 -우리가 많이 먹는 차진 쌀이 뭔지 헷갈릴 때는 Japanese rice를 사면 된다. 참고로 가장 흔한 품종인 Jasmine rice는 동남아 지역에서 주로 먹는 쌀이다.- 세이프웨이 같은 대형마트에 가면 햇반 스타일의 인스턴트밥과 한국 (컵)라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트레이더조에서는 한국 김을 판다. 두부도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장류 몇 가지만 구비해두면, 굳이 한인마트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나 필요에 의해 한인마트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내가 방문했던 두 곳을 소개한다.
1. 우리마켓 Woori Market
재팬타운에 위치한 한인슈퍼마켓.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웬만한 건 다 있다. 한국산 과자나 라면같은 공산품은 물론, 샌프란에서 의외로 흔하지 않은 바지락이나 생선, 해산물 종류도 있고, 김밥, 전, 족발 등등의 한식도 완조리해서 판매한다. 주인도 물론 한국인이고, 한국택배도 취급한다.
샌프란의 재팬타운은 사실상 코리안타운이라고 봐도 된다. 인근에 다른 한인슈퍼마켓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전 대통령들도 방문했다는 유서깊은 한국식 중국집 산왕반점도 인근에 있지만, 요즘은 현지화되서 이맛도 저맛도 아니라는 평이 많다. 단, 우리마켓 주변은 노숙자가 많다. 낮에는 크게 문제될 일이 잘 없지만, 저녁 6-7시 이후로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겠다.
2. 국제 슈퍼마켓 (Kukje Supermarket)
샌프란 남쪽의 달리시티(Daly City)에 위치한 큰 규모의 한인마트. 일대에서 가장 크다. 달리시티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다보니 샌프란-버클리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본격적으로 장을 볼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많이들 가는 것 같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바트를 이용해 Daly City에서 내려서 버스나 도보로 이동하면 된다. 접근성이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차량을 이용하길 추천한다. 국내기준으로 대형마트까지는 아니고, 동네마다 있는 중형 마트? 정도의 규모로 직접 조리한 한식과 김치부터 다양한 한국산 식품들은 물론 농산물까지 취급한다. 한국 야채가 필요하면 여기로 가면 된다.
샌프란의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저렴한 수준이지만, 한인마트를 주로 이용해서 장을 보면 아무래도 식비가 더 많이 든다. 물건값 하나하나를 보면 한국보다 그렇게 많이 비싼 건 아닌 것 같은데, 한국에서와 달리 저렴한 대체제를 찾을 수 없어서인지 계산할 때가 되면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온다. 쌀이나 라면 같은 건 현지 식료품점에서도 얼마든지 저렴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한 재료가 아니라면 굳이 한인마트를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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