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신나간 세상에서 질서를 구축한다는 건 요리의 매력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레시피를 경전숭배하듯 따라할 필요는 없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레시피는 하나의 요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미국의 미식 매거진 Eater에 실린 Navneet Alang의 글을 소개한다. (2020. 06. 17.)
원문: https://www.eater.com/2020/6/17/21255211/what-is-a-recipe
레시피란 무엇인가?
레시피는 고정된 경전이라기보다는 거푸집에 가깝다. 그렇다면 레시피를 그렇게 취급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나는 요리할 때마다 내 불안을 팬에 쏟아붇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랫동안 볼로네제를 끓이거나 시험삼아 병아리콩 가루로 팬케이크를 부치는 것에서부터 칠리오믈렛이나 펀자비(Punjabi: 인도지방) 요리 같은 익숙한 음식까지, 지난 몇 주간 나는 폭풍같이 요리를 해왔다. 분명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절반, 그리고 아마도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과 마찬가지로, 이 코로나 시대에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요리했다.
물론, 2020년 들어 우리는 단지 요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과 먹은 것을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SNS에 포스팅하고 있다. 한 테이블에 모여앉을 기회를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대신 가상 현실에서의 공동체 경험에 몰두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요리에 몰두하게 되는 까닭은 분명하다. 식당들은 여전히 대부분 문을 닫았고, 테이크아웃을 하기에도 (비록 비이성적이라고 해도)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으며, 갈만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염려가 팽배해있고, 사회운동가들이 경찰의 폭력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전국적인 인식을 촉구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뭉클하든간에 이런 일들은 지금이 유례없는 시대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시켜줄 뿐이다.
반면에 요리는 최소한 익숙한 일이고, 더욱이 돌봄의 행위이기도 하다. 더구나 레시피대로 따라하는 일은 의식같은 면이 있다. 잘 만들어진 연속 과정을 반복하는 행위는 세계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것으로 느껴질때 위안을 준다. 때로는 그것이 요리의 즐거움이다. 단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뿐이 아니라, "먼저 이걸 하고, 다음엔 저것"을 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레시피는 전해져내려오는 지혜, 혹은 지식의 보고로 느껴지기도 한다. 단지 맛있는 음식이 주는 기쁨이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보장할뿐 아니라 역사와 요리 문화의 연결고리라 할만한 소중한 텍스트로 말이다. 레시피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이렌이 울려대고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스크린을 가득 매울 때, 음식으로 과거의 요리문화와 내가 속한 문화와 연결되는 느낌은 퍽 안정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요리 그 자체가 종교행위는 아니라 해도, 요리는 시크교에서 세바(seva)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성격이 있다. 세바란 신앙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신과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를 말한다.
레시피는 성서로, 요리는 그것을 문자그대로 따르는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특히 요즘 내가 직접 올리거나 보게 되는 거의 모든 요리 포스팅에 똑같은 댓글이 달려있는 까닭일 것이다: "레시피가 뭐에요?"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나 새로운 요리의 이미지가 스크린에 뜰 때마다, 우리는 모두 직접 따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원하는 듯하다.
그건 이해할만한 충동이다. 레시피는 도움이 되는 가이드이자, 미지의 영역으로의 지도이다. 특히 요리가 두렵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레시피는 논리적인만큼, 동시에 익숙함과, 글쎄, 아마도 지루함 사이에 놓인 관념형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레시피를 성경으로, 요리하는 사람은 그것을 문자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일부 기독교 전통에서 성경은 신의 말씀 그대로라고 여겨진다. 시크교에서도 역시 성스러운 구루 그란트 사히브(Granth Sahib)의 책이 신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라고 간주된다. 레시피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따르고 복종하고 전수하고 후세도 따라야 하며 심지어 어느 정도 숭배되어야 하는 논리적인 문헌으로 말이다. 레시피는 정확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성서와 같이 레시피는 엄격한 명령들로 가득차있으며, 역시 성서와 같이, 거의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분명히 레시피를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 베이킹이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카치오 에 페페(cacio e pepe: 정통 로마식 파스타)나 프랑스식 오믈렛처럼 정교하지만 미니멀하고 기술이 중요한 요리들도 그렇다 - 이런 요리들의 경우 레시피에서 어긋나면 요리의 기본적인 성격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법에 충실한 음식은 레시피가 품고있는 가능성을 잘못 재현할 수 있다. 아마도 요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란 경전을 떠받들듯 하는 것보다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레시피들을 상호 참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요리하는 아주 많은 것들은 사실 정확히 교체가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유사하고 관련있는 부분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에 대한 상호텍스트적 접근은 요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립할 수 있는 유닛(unit)으로 여기는 일이다. 풍미를 더하도록 카라멜화한 베이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한 기술이나 재료, 반찍임이나 스파이시하고 가벼운 맛을 내기 위한 허브혹은 피클같은 것들. 이건 마치 맛을 멜로디처럼 여기는 관점이며 - 감칠맛이 베이스로 깔리고, 산미와 매운맛, 쌉쌀한 맛은 높은 음에 해당하며, 흙내음은 중간음이다 -, 또한 요리란 곧 테크닉과 재료를 조합하는 기술이라고 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는 레시피 모음인 요리책과 아틀랜틱(Atlantic) 지가 스텝 바이 스텝 가이드라기보다 "요리철학(a cooking philosophy)"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한 사민 노스란(Samin Nosrat)의 요리책 "소금, 지방, 산, 매운맛 (Salt, Fat, Acid, Heat)"의 차이점이다.
레시피를 상호참조 가능한 부분들이라고 여기는 것은 지금같이 많은 사람들이 집에 박혀있거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적응해야 하는 지금 특히 유용하다. 레시피를 요리과정이 아니라 어떤 논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레시피는 단지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법이 아니라 요리법 일반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리치한 맛의 이탈리안 미트 소스나 클래식한 북부 인도 커리를 예로 들어보자. 이것들은 각기 양파와 마늘을 기름에 카라멜라이즈하여 단 맛과 깊은 맛을 더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과정이 토마토를 이용하여 반복된다. 소프리토(soffritto: 음식이 바탕이 되는 채소를 잘게 썰어 섞은 것) 같이 채소나 북인도식으로 강황, 큐민, 고수의 조합으로 풍미를 돋우고, 재료들이 풍성한 맛을 내도록 시간을 들인다. 주재료 -다진 소고기나 닭다리살- 를 넣고서 리치한 맛을 위해 크림을 넣기도 하고, 바질이나 실란토르를 첨가해 요리의 맛을 밝힌다.
물론 그저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레시피의 지시를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요리들을 테크닉과 맛이라는 벽돌로 음식에 접근하게 해주는 거푸집이라고 생각하면 더 낫다. 그러면 전형적인 방식으로도 또 새로운 방식으로도 요리를 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레시피를 경전받들듯 하게 되면 불필요한 제약을 받게 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러분의 발 밑에서 두 아이가 당신을 돌아버리게 만들고 있다거나 이런 전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스트레스로 우울하다면 레시피를 따라서 전형적인 맥앤치즈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뭔가 스트레칭을 하고 싶거나 아니면 그저 심심하다면, 그러니까 세상의 끝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조금의 신성모독적인 자유를 허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번역은 엄격한 직역보다 약간의 의역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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